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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0.9.4.[武林高手를 찾아서] "다른 무술인과 겨뤄 져본 적 없어"
김재호  조회 : 1,864
- 첨부파일 #1 : 2010090301934_0.jpg (63.7 KB), Download : 45


▲ 스페인과 한국을 오가며 16년간 한국 전통무예 십팔기를 연마한 마르크 사범이 힘차게 월도를 휘두르고 있다. 그는“웬만한 한국인 사범보다 낫다”는 평을 듣는 고수이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십팔기 스페인 사범 마르크 베르제… 각종 무기로 온몸 단련 "15년 해도 끝이 안보여"
뒤주에서 생을 마치기 직전인 영조 35년(1759년), 사도세자(莊祖)는 여러 갈래로 흩어져 내려오던 고유 무예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때 등장한 게 맨손 권법과 병장술을 합친 십팔기(十八技)다.

사도세자 사후 십팔기도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하지만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아버지의 꿈을 완성시켰다. 1790년 4권짜리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나왔고 여기서 조선 후기 공식무예가 십팔기라는 명칭으로 확정됐다.


■전통 열여덟 가지 기예

십팔기는 열여덟 가지 기예를 합한 것이다. 삼지창 당파, 깃발 달린 기창(旗槍) 같은 다섯 가지 창술에, 칼을 쓰는 여덟 가지 검술이 더해졌다. 이 13가지에 월도(月刀)·협도(挾刀)·곤봉(棍棒)·편곤(鞭棍)을 더한다.

여기에 병장기가 아닌 맨손 무예인 권법을 더하면 비로소 열여덟 가지가 되는 것이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무기를 든 병사들이 대형을 이뤄 서로 보완해주며 적과 싸우는 십팔기는 조선 말기까지 군사 무예로 활용된다.

일제 암흑 기간엔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고 1945년 광복 후 첫 개천절 행사에서 십팔기 연무가 펼쳐졌다. 하지만 이후 십팔기는 주류 문화가 된 현대의 군사 체육에 밀려 또다시 한동안 모습을 숨기게 됐다.

그러던 1970년. 독립운동가 오공 윤명덕 선생 아래에서 기예를 전수받은 해범 김광석 선생(74)이 서울역 앞에 십팔기 도장을 처음 열며 전통 무예 명맥 잇기에 나섰다. 현재는 전국에서 수만명이 십팔기를 수련하고 있다.

■'푸른 눈'의 고수

조선시대에 태어난 십팔기의 고수(高手)는 스페인에도 있었다. 공인 4단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00여명의 제자를 둔 마르크 베르제(29)다. 이 '푸른 눈의 고수'가 십팔기를 처음 접한 것은 13세 때였다.

당시 이소룡의 절권도에 이어 킥복싱이 스페인 전역에서 인기였다. 소년도 동양의 신비로운 무술을 배우려 했다. 의사 아버지는 아들이 길거리에서 싸우는 것을 원치 않았고 몇 년 전 자기가 치료했던 한 동양 무도인을 떠올렸다.

70년대 해범 선생에게 십팔기를 배워 스페인에서 도장을 운영하던 설성 사범이었다. 마르크의 아버지는 "몸과 정신을 모두 갈고 닦으라"며 십팔기 도장에 아들을 집어넣었다. 마르크는 단번에 십팔기에 빠져들었다. 도장에 나가는 것 외에도 날마다 6~8시간을 홀로 연습했다. 2000년부턴 거의 매년 여름·겨울마다 한국에 왔다.

그는 사범인 동시에 바르셀로나 메디컬센터에서 자신의 침술 오피스를 운영하는 한의사이기도 하다. 십팔기로 몸 안의 기(氣)를 잘 조절해야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바르셀로나의 한 대학에서 침술을 배운 것이다.

■완성된 인체를 향해

마르크는 "십팔기는 각종 무기를 다 쓰기 때문에 다른 무술보다 강하다"고 했다. 맨손의 상대에게 무기를 들이댄다는 뜻은 아니었다. 길고 짧은 창, 칼, 봉까지 모두 섭렵하면서 모든 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마르크는 "온몸의 마디마디까지 잘 훈련해야 제대로 된 십팔기를 할 수 있다"며 "펀치 한 방을 날려도 전체적인 몸의 반동을 이용하는 것과 손만 뻗는 것은 강력함의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마르크는 주짓수, 킥복싱 사범들과 수없이 한 대련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다른 무술은 10년이면 고수 소리 듣지요. 십팔기는 15년을 해도 할 게 많이 남아있습니다. 인체의 완성된 형태를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무술이니까요."

2010.09.04.  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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