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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검(本國劍)
최형우  2008-07-11 21:58:40, 조회 : 2,867
- 첨부파일 #1 : 본국검.gif (13.8 KB), Download : 231


본국검(本國劍)

김광석(金光錫) 지음
1995년, 동문선(東文選)
ISBN 89-8038-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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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회는 유구한 세월을 면면히 이어 오면서 자연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을 완성시키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것은 현대사회나 고대사회 모두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무예는 이렇듯 실천활동으로 추구하면서 수천 년의 자아단련을 거쳐 창조된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무예의 기원을 두고 어떤 학자는 원시사회가 토템숭배 의식 중 동물의 특징을 모방한 무용舞踊이나, 명확하게 적을 이겨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격투 동작들이 바로 무예의 시작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들 토템숭배 의식의 무용이나, 본능적인 자기방어 행동이 무예의 시원始源 중의 하나라고는 볼 수 있으나, 무예의 기원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무예의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엄격한 무예의 의미는 자위적 본능의 공방기술攻防技術이 축적되고, 병기兵器의 발전과 더불어 전문적으로 공수攻守와 살상殺傷을 담당하는 무사武士가 생겨난 때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역사상 무예는 몸을 방어하고, 나라를 지키며, 세상에 나가 입신하고, 몸을 단련하며, 성품性品을 닦는 인생의 수양을 중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었다.

무예활동의 형성과 발전은 각종 문화조건과 사회배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유사 이래로 사회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서 무예 또한 끊임없이 발전 변화하였으나, 어떤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융화되거나 소멸되기도 하였다.

현재 내려오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는, 옛부터 이 땅에 전승되어 온 무예武藝를 조선시대朝鮮時代 선조宣祖에서부터 정조正祖에 이르는 2백여 년 동안 발굴, 정리하여 체계화시킨 무예서武藝書이다.

그 편찬과정을 살펴보면 선조宣祖의 명에 의해 훈국랑訓局郞 한교韓嶠가 6기六技(곤봉棍棒, 쌍수도雙手刀, 등패藤牌, 낭선狼筅, 장창長槍, 당파鐺鈀)를 정리하여 <무예제보武藝諸譜>를 간행하였으며, 영조英祖 때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서무를 대청代廳하던 중 <무예신보武藝新譜>를 편찬하도록 명하여 12기十二技(예도銳刀,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월도月刀, 협도挾刀, 제독검提督劍, 왜검倭劍, 교전交戰,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권법拳法, 편곤鞭棍)을 <무예제보武藝諸譜>의 6기六技에 더하여 18기十八技를 정하고, <십팔기十八技>의 명칭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후 정조正祖의 명에 의해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 백동수白東脩 등 실학자들이 널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이를 더욱 체계화시키고, 마상6기馬上六技를 더하여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하였다.

내용이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무예도보통지>는 원문 4권 4책에 언해를 별권으로 붙여 도합 5권으로 간행된 귀중한 문헌이다.

우수한 문화유산은 모두 계승과 발전의 관계 속에서 크게 발휘되는 것이다. 우리 무예武藝를 배우고 익히는 것도 이와 같다. 바람직한 계승이 없으면 발전을 논할 수 없으니 계승과 발전의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은 무예인武藝人들의 주요 과제이다.

우리의 검법劍法은 이미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과 지혜의 성과가 축적되었으며, 그 내용과 기법技法도 개진改進되고 향상되었으며, 품격 또한 더욱 선명해졌다. 앞으로 더욱 많은 무예인武藝人들의 노력으로 우리의 검법劍法이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며, 무예문화武藝文化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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